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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순례기(대전목회자성지팀)

글쓴이 : 포토바이블 날짜 : 2012-12-17 (월) 18:25 조회 : 2117


아래의 글은 2012년 5월에 있었던 이원희목사 인도 대전 지역 목회자 성지순례팀에 대한 최덕성목사님의 글입니다.
성지 순례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의 선교여행을 따라 (첫째 날)
4월 30일(월) 오후 5시 대전 월드컵경기장 주차장에서 27분이 반가운 얼굴로 만났다.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서로 물으면서 성지순례에 대한 기대와 꿈을 가지고 대전 대흥교회 전도사님이 운행하는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출발의 기도를 최석락 목사님께서 해주셨고, 최경만 목사님의 처음 동행하기로 했었던 김억일 목사님, 유병억 목사님, 한준석 목사님의 잘 다녀오심에 대한 소식과 간식에 대한 설명과 일정의 협조를 부탁하였다.
이어서 최동주 목사님의 회계 보고가 있었는데 모두 수고와 감사의 박수로 받았다.
대전을 출발한 버스가 차 안에서 간식을 나누다보니 어느 누구 하나 저녁을 먹자는 소리도 없이 달리기를 시작했다.
서해안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 차가 밀리기 시작하던 중 화성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하고 7시까지 개인적으로 쉬고, 다시 출발하여 8시 10분 드디어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먼저 도착하여 우리의 일행을 기쁜 모습으로 맞이해 주신 이원희 목사님과의 만남을 갖고 비행기 티켓 팅에 들어갔다.
공항에서 이승남 목사님의 여식, 슬기 내외가 나와 우리의 일행에서 음료수를 대접하고 안부와 잘 다녀오심에 대한 전송을 받으며 이원희 목사님의 터키행의 비행기 좌석이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는 소식과 일행의 짐을 부치고 일정에 대한 잠시의 소개를 받고 입국장으로 검색대를 통해 들어갔다.
면세점에서의 쇼핑과 구매를 기대했는데 9시 이후의 면세점은 거의 문을 닫았고, 화장품 매장과 주류 매장 만이 문을 열고 있었다. 그리고 선글라스, 삼성제품을 파는 조그마한 가게만이 열려 있어서 잠시 구경을 하고 111번 게이트로 삼삼오오 모여 비행기 탑승을 기다렸다.
11시가 되어 비행기 탑승 수속이 시작되었고, 비행기에 오르니 부부간의 자리가 함께 되어지지 않아서 여러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이 자리를 서로 바꾸어 가며 부부 간의 자리를 만들어 앉고 비행기의 출발을 기다렸다.
11시 50분 경 드디어 터키 행 비행기의 이륙의 큰 소리와 함께 이륙을 하여 바울의 성지 순례의 길을 시작하였다. 물론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준비였겠으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29명의 성지순례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의 마음으로는 바울은 배를 타고, 또는 걸어서 복음 전도의 길을 떠났는데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엄청난 과학의 발달로 비행기와 버스 등을 통해서 순례의 길을 가니 세월의 흐름과 인간이 만든 과학의 힘도 또한 대단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탑승시 준 봉지를 펴보니 칫솔과 양말, 수면안대, 귀마개가 있었는데 개인에게 주는 것이었고, 함께 준 슬리퍼를 신발과 바꾸어 신으니 너무 편했다. 지난 번 이집트, 요르단 성지순례 때 그렇게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갈 때 이런 서비스가 없어서 비행기 안에서 신발을 벗고, 신고를 반복했는데 피곤이 풀어지는 것 같아 좋았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기내식이 나왔다. 비빔밥을 먹었는데 나름대로 맛이 있었다. 터키항공인데 비빔밥이 나오는 것을 보면 한국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후 다시 취침모드로 들어갔다.
사람의 습관은 무시할 수 없는가 보다. 새벽기도의 시간 즈음에 일어나는 것을 보니 모든 목회자의 모습이 들어난다. 비행기 안은 에어콘과 히터가 번갈아 가며 나오니 어쩌면 이것이 더 우리의 몸 상태를 나쁘게 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된다.
지금 이 글은 비행기 안에서 우리 딸아이가 성지순례를 위해서 선물로 준 아이패드1로 작업을 하고 있다. 컴퓨터의 발전이 어디까지 갈 건지 사뭇 궁금하기도 하다. 어쨌든 즐겁고, 복된 바울 선교여행지의 순례 여정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도가 절로 나온다. 아마도 이 마음은 함께 동행하는 모든 분들의 마음일 것으로 생각된다.
얼마 후 이원희 목사님으로부터 앞으로 4시간 여 후면 터키의 이스탄불에 도착할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모든 승객들이 거의 잠을 청하는 어두운 비행기 안에서 아직 익숙하지 못한 아이패드로 작업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로 부족한 것이 많다. 빨리 기능을 익혀야 하겠는데.......
현지 시간 아침 9시경 기내식을 먹었다. 기내식은 그저 평범한 음식이었다. 치즈, 빵, 계란과 호박, 가지, 토마토, 버섯, 양파를 볶아서 나오고, 국적 없는 커피도 나왔다(최정란사모 제공).
앞으로 1시간여만 가면 이스탄불에 도착할 것이다.
기대를 품고 아침을 맞이하며 새벽기도도 기내에서 대신한다(참고 : 10여 시간의 비행, 옷은 제일 편안한 것을 챙기세요).
이스탄불 공항에 현지시간 5시 30분경 도착하여 현지 가이드와 미팅을 하고 개략의 여행 일정과 국내선으로 갈아탈 것에 대한 설명을 듣고 국내선 탑승을 위한 검색대를 통과하여 국내선 게이트로 이동했다.
이스탄불 공항은 터키의 허브공항으로서 약 40여개의 항공사의 비행기가 이착륙을 한다고 하며 약 3분에 한대씩 이착륙을 할 정도라고 하였는데 기다리는 동안 이륙하는 비행기를 세어보니 거의 1분 50초에 한 대꼴로 이륙하는 것을 보았다. 이곳 터키는 그만큼 비행기를 많이 이용한다는 부연 설명이 있었다. 이곳은 우리나라보다 사는 것이 조금 못하여 서비스와 모든 질이 떨어진다는 설명도 함께 있었다. 국내선 탑승 수속을 하던 중 한쪽 벽에 걸려있는 동판 얼굴상에 대해 물었더니 터키의 초대 대통령(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이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게이트에서 9시 20분에 만나 국내선에 탑승하여 1시간 20여분 후 첫 순례의 길인 수리아 안디옥으로 향하게 되었다.

바울의 전도여정의 길의 첫발을 내딛는 것이다. 가슴이 벅차오르며 어떤 기분일까? 기다려본다.
이스탄불에서 국내선을 타려고 약 3시간을 기다렸다. 많은 시간이라면 많은 시간이었지만 그런데도 지루한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인솔자이신 이원희 목사님께서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오시더니 갑자기 김밥에 김밥이 생겼다(현지 관광회사 사장이 제공하는 것). 일행이신 정웅주 목사님께서 음료수를 제공하여 맛있게 먹었으나 이스탄불에서의 김밥은 밥이 설익었다는 느낌, 좀 질기다는 느낌이 있었다.
9시 40분 수속을 받고 국내선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에서 기내식이 제공되었는데 샌드위치에 꼬모, 함께 나온 건포도를 맛있게 먹었다.
비행기에서 밖의 풍경을 보고 있는데 하얀 호수가 보였는데 궁금하던 차에 이원희 목사님의 설명에 '소금 호수'라 하였고, 눈이 있는 산을 보게 되었는데 이 산이 성경의 아라랏 산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 10,000미터의 상공을 날고 있지만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그 옛날의 노아방주는 보이지 않는다. 저 높은 산, 만년설이 덮힌 산까지 물이 차 올라 지면의 모든 생명체를 물로 심판하셨다니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많았으면 싶었다. 인간의 죄악성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어서 높은 산이 보였는데 터키의 토루스산맥을 비행기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 토루스산맥은 바울이 산을 넘다 강도를 만난 곳이기도 하다. 인간의 삶은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 없이 어찌 인생이 바른 길로,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총을 바라며 이번 성지순례에도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해 본다.
비행하면서 왼쪽 편에 앉아서 가는 것이 복이었을까? 아주 귀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원희 목사님께서는 오른쪽의 분들과 10달러 받고 옮겨보라고 하나 그 누구도 옮기려는 사람은 없었다. 비행기 아래로 오른편으로는 바울의 고향인 다소가 보였는데 산악이 많은 지역이지만 유독 이곳은 평야가 넓은 지역이었다. 바울의 고향을 지나가면서 고향을 찾는 자녀들의 마음처럼, 또 그 자녀를 맞이하려는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며 바울의 고향을 지나간다. 아주 좋은 비행의 시간이었다.
열심히 날던 비행기는 11시 50분 경 오늘의 목적지인 수리아 안디옥을 가기 위해 하타이 공항에 도착하였다.
수화물을 찾을 때 일행의 한분이신 이병홍 목사님의 가방이 파손되어 관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6,000킬로를 타면 그리스로 간다고 생각하면서 12시 40분 버스를 타게 되었는데 우리의 여정을 위해 후세인의 운전하는 버스에 현지 가이드 하산, 김홍기 강도사와 함께 순례의 여정을 출발하면서 먼저 베드로 동굴교회를 출발하기 위해 식사도 뒤로 하면서 이원희 목사님의 기도하심으로 바울의 여정을 출발하게 되었다.
김홍기 강도사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30-40분정도 달리게 되면 오늘의 첫 방문지인 베드로동굴교회를 방문하게 된다.
비가 1년에 700밀리 정도 오기에 물이 귀하여 저수지가 많이 발전하였고, 터키인들은 비가 올 때는 알라의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비를 맞는 것도 즐겨한다고 한다. 버스는 오늘 하루 종일 타게 되는데 가방은 놓고 다녀도 좋다고 하는데 여보는 꼭 챙기라 한다. 여보는 여권과 보따리의 은어라 한다. 그리고 돈과 가전제품 등을 조심할 것을 설명하다. 베드로동굴교회를 관람하고 바울의 고향인 다소로 가던 중 늦은 점심을 류지헌 목사님의 기도로 하였다. 식사명은 에크멕이란 빵(밀가루에 약간의 소금으로 간을 해서 직접 화덕에 구운 것), 녹두 스프, 아다나 케밥(첨가된 고기는 소고기)을 먹었다. 밥은 쌀로 밥을 해서 올리브기름에 볶다가 소금으로 간을 한 것인데 크게 맛은 없었다. 음식의 간이 조금은 짜기에 함께 나온 밀가루로 만든 전병같은 것에 싸서 먹었는데 터키의 음식으로서의 의미와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후식으로 나온 오렌지, 바나나, 사과로 오늘의 점심 입맛을 정리하고 공립학교(화장실이용 요금을 지불하지 않는 화장실)에서 볼 일을 처리하고 다소(바울의 고향)로 방향을 정하고 출발하였다. 가는 도중에 오른쪽 편으로 펼쳐지는 지중해를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먼 거리를 차로 이동하는데 고속도로인 것 같은데 차량의 통행량이 그리 많지 않았고, 규정 속도의 안내문이나 무인 단속기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땅도 넓고 자원이 많다보니 여유가 있어서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바울의 고향 다소에 5시 50분경에 도착하여 먼저 클레오파트라 문에 도착하여 이곳의 발전상과 인접한 도시의 관문이었음을 설명 들었다. 그리고 바닥의 다른 곳과는 달리 검정색으로 깔린 곳이 바울 당시의 길에 깔은 돌이었다는 설명을 듣고 바울이 거의 걸었을 것으로 확정할 수 있는 도로를 우리도 걸어보면서 그의 행적을 돌아보았다. 그곳에서 일행의 단체 사진을 찍고 바울의 생가 터와 우물터를 걸어서 찾았다. 가던 가운데 아골라 시장터와 바울 당시의 길을 보면서 바울의 삶의 모습을 추리해 볼 수 있었다.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이요,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자요 천막을 짓는 자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서 바로 인근의 성벽 위의 주거터를 보게 되었는데 바울이 성벽에서 달아 내리게 된 경우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와 오늘의 숙박과 내일의 성지순례를 위한 갑바도기아로 6시 30분 경 출발하여 버스로 약 3시간의 길을 달려 가게 되었다. 버스 안에서는 거의 모두가 취침모드로 전환이 되었다. 비행기 탑승만 13, 4시간 정도, 기다리는 시간 3, 4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만 해도 6-7시간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모두 편히 쉬시기를 바라보며 창밖의 산에 아직도 녹지 않은 눈과 도로 위의 모습과 큰 대조를 이루면서 이 험한 골짜기를 바울은 낙타나 나귀를 타고 하루 60Km정도 밖에는 이동할 수 없으며 갖가지 위험 즉 강도, 동족의 위협 등을 이기며 이 길을 통과했으리라 생각하며 우리는 이 시대에 어떤 각오와 생각으로 임해야 할까를 생각해 본다.
9시 30분 드디어 오늘의 숙박지인 갑바도기아 데데만 호텔에(DEDEMAN HOTEL) 도착하기 전 최덕성 목사님의 기도로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모든 수고하신 기사와 가이드를 위하여 박수하며,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돌리며 늦은 저녁을 호텔식으로 하였다. 모두 쉬어야 하겠다는 생각과 피곤하여서인지 급하게 식사들을 하시고 배정된 숙소로 편안한 밤 되시라고 각자 인사를 나누고 숙소로 향했다. 모두들 편안한 밤 되시고, 주님과 이 밤도 동행하시기를 기도해 본다.
아울러 두고 온 가정과 교회에 대한 기도도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기도한다.


바울의 선교 여행을 따라 (둘째 날)
오늘 아침의 기상 시간이 새벽 2시 30분이었다.
가이드 강도사님이 새벽 3시경이면 일어날 것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 말이 사실이었다. 몸은 피곤한데 생각은 오늘의 바울의 전도여행지에 대한 설렘과 기대, 흥분 등이 교차해서일까? 오늘도 사랑하는 주님께 기도해 본다. 주님! 귀한 감격과 이 경험을 우리 교인들과 한국교회를 위해서 쓰임을 받게 하소서! 그리고 교회와 가정 등을 지켜주옵소서!
6시 삼삼오오 식당에 모여 아침 식사를 하고 7시 출발하기에 앞서 서로의 안부와 건강과 평안을 기쁨으로 인사 나누며 노흥방 목사님의 기도로 출발하였다. 오늘도 하나님께 영광을 박수로 돌려 드리고, 우리 모두를 격려하며 힘을 내기 위한 박수를 하며 찬양집 30번 '주만 바라볼지라', 37번 '주님 말씀하시면'을 목청껏 찬양하며 이 땅에 바울의 복음전파의 새로운 역사가 일어날 것을 소망하면서 부른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의 신비로운 모습과 그 속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피난을 하면서 믿음을 지킨 선배들의 모습과 복음 전파를 생각하면서 순례의 길을 출발해 본다.
갑바도기아(파샤바)로 가는 길은 너무나도 좋았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이 멋있는 풍경을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무엇이라 표현하랴!
300만년 전 있었던 지진의 활동으로 화산에서 뿜어 나온 화산재는 응회암이라는 잿비 암석으로 굳어졌고, 오랜 기간의 풍화작용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신비한 모양의 돌들로 변화했다. 이 암석지대는 오늘의 네브세힐, 카이막클리, 젤베 사이에 있는 삼각지역이며, 그 중심이 괴뢰메와 위구릅이다. 이 지역은 신비하고 진기한 원추형 모양의 수천 개 석주현상이 이루어진 기암괴석으로 만드신 이 갑바도기아는 성경에 두 번 소개되었는데 오순절 각지에서 참석했던 여러 지방의 사람 중에 갑바도기아 사람이 있었다고(행 2:9) 했고, 베드로가 각지 성도들에게 서신을 보낼 때 이곳 갑바도기아에도 보냈다고(벧전 1:1)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암괴석(원추형)에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환난을 피해서 신앙생활을 하던 모습과 기독교가 공인되고 난 후 금욕생활을 위하여 계속 이곳에서 생활을 하던 수도사들이 이 기암괴석으로 타고 올라가(암벽 같음) 꼭대기에서 기도하던 모습, 교회, 그 구조 등에 다시 한번 놀랐다.
데브란트(버섯바위)로 이동하던 중 버스 안에서 정웅주 목사님의 섹소폰 연주로 '참 아름다워라'를 찬양하니 그 찬양이 또한 너무 감격스러웠다. 모두 내려서 함께 촬영의 시간을 가지니 모두 동심으로 돌아간 것처럼 즐겁게 촬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아기같다는 생각과 함께 주님께서 만드신 놀라운 솜씨 앞에는 모두 아기같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바위들의 모습을 보니 낙타바위, 나폴레옹 모자바위, 형제바위 등 그 모양 등이 너무 신기, 신비하며 아름다웠다.
다시 그레이트 바실리우스(대 바질)의 괴뢰메 동굴로 이동하였다. 이 괴뢰메는 갑바도기아의 가장 중심되는 곳으로 그 뜻은 '보이지 않는 지역'이라는 뜻이고, 이곳은 유명한 동굴교회가 많은데 대표적 교회로 사과교회, 토카교회, 성 바르바라교회, 다니엘교회 등이 있었다. 이러한 여러 동굴을 돌아보면서 신앙의 선배들의 열정과 박해 등의 어려울 때 신앙을 지키는 모습은 너무 감동이었다.
한 광장에서 우리 일행들이 둘러 앉아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참 아름다워라' 정웅주 목사님의 섹소폰 연주로 함께 찬양하였더니 이곳에 관람하던 모든 사람들이 다 몰려들어 함께 찬양하며 즐거운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위구릅과 젤베지역은 500m 높이의 산악과 절벽이 지진에 의해 무너지면서 원추형 모양을 이루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암석을 파서 수도원으로 이용하게 되었는데 그 내부의 벽과 천정에 그려진 성화들은 오랜 세월 동안에도 원색이 보존되어 있고, 아랍계 핍박자로 인해 성화들이 많이 훼손이 이루어졌다고 하며 젤베계곡에는 포고교회와 사슴교회가 유명하다고 한다.
버스를 타러 오던 중 길의 한 상인이 정웅주 목사님께 섹소폰 연주를 부탁하여 즉흥 길거리 연주회가 열렸고 작은 기념품을 선물로 받았다.
이어서 우치히사르-우치(삶) 히사르(성채)에서 사진 촬영했는데 너무 멋있었고, 지나가던 길에 한 상점에 들려서 최씨 문중의 목사님들이 돈을 모아 지역의 맛이 있다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사진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다. 가면서 이 갑바도기아를 기구를 타고 관람하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남겨야 했다.
버스에 다시 승차하여 아바노스의 도자기가 유명한 마을을 통과하여 동굴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이곳에는 11시 정도에 동굴식당에 도착하여 '초르바'라하는 스프와, 항아리 케밥, 야채 샐러드로 즐거운 식사의 시간을 가졌다.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이른 점심을 먹었다.
식후 보석상을 방문하여 터키석에 대한 설명과 쇼핑을 하였는데 보석을 보면서 과연 어떤 마음들이 들었을까? 금보다 더 정금보다 더 귀한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그래도 몇 분은 100%의 터키석을 구입하는 기쁨도 누렸다.
이곳을 출발하여 데린구유로 이동하면서 이번 성지여행의 주제곡 '주님 오실 때까지'를 부르고 출발하고, 이 데린구유의 고난과 환난의 자리에 있었을 때 찬송 147장 '그 때 너 거기 있었는가 그 때에'의 찬송을 먼저 버스 안에서 부르면서 감격과 감사 그리고 결단의 시간을 가져보았다.
데린구유에 들어갔다. 그 옛날 믿음을 위해서 그토록 어렵게 굴을 뚫고, 파서 삶의 공간을 만들고, 신앙을 지킨 모습에 경탄함과 그들의 신심에 정말 고개가 숙여진다.
교회 터에서 함께 기도하는데 이원희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 때 너 거기 있었는가 그 때에'를 생각해보니 얼마나 감동이 되던지.......
또 신학교 터에서 함께 '환난과 핍박 중에도'를 찬양하는데 정말 신학교의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며, 목사 안수시의 감격과 감동을 가지고 아직도 목회를 하는지? 새로운 결단의 출발이 되어 너무 좋았다.
다시 버스에 올라 루스드라를 향해 1시간 여를 달리던 중 휴게소에 들리게 되었는데 '대상들의 숙소'를 보게 되었는데 그 규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다시 버스는 2시간 여를 더 달려 루스드라에 도착하게 된다. 이 루스드라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고치는 기적을 행한 곳이다(행 14:8-11). 그러나 그 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의 선동으로 무리에게 돌을 맞아 기절하여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른 후 구사일생으로 회생되어 이곳으로부터 남동쪽으로 96km 떨어진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행 14:19-21)고 한다. 이 루스드라로 추정되는 곳은 세 곳이 있으나 오늘 우리가 오른 곳이 가장 확실시 되는 곳으로 추정된다. 이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고 다시 이곳을 찾아 복음을 전하는 열정을 다시 생각하며 감격에 젖어본다.
이곳에서 512장 '온 세상 위하여 나 복음 전하리' 찬송을 부르고 바울의 복음의 열정과 목회의 방법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고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며 결단하며 류지헌 목사님의 기도로 마무리하고 오늘의 숙박의 장소인 이고니온을 향하여 버스에 올랐다.
루스드라에서 40여분 버스로 달려 이고니온의 꼬냐, 베라 4성급 호텔에 도착하여 호텔식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방으로 편안한 밤의 안식을 취해본다.


바울의 선교 여행을 따라 (셋째 날)
꼬냐의 베라 호텔에서 아침 6시 모두 호텔 식당에서 모여 지난 밤의 안부를 물으며 맛있는 호텔식 아침식사를 마쳤다.
7시 40분 오늘의 여정을 위해 최동주 목사님의 기도로 출발하면서 바울의 선교 여행지를 뒤돌아보며 찬양집 21번 '내 평생 살아온 길'을 불러본다. ‘천하디 천한 종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었으니 예수님만을 나의 자랑으로 삼으며 주님과 함께 걸어가며 복음 위해 살기’를 고백해 본다. 19번 '더욱 크신 은혜' 내가 지금 사는 것은 주의 크신 은혜임을 찬송으로 고백하니 출발 전부터 일행 모두 은혜가 충만하다. 주여! 은혜와 축복의 날 되게 하소서! 아멘! 아멘!
또 다른 찬송. 20번 '주여 이 죄인이' 오늘도 복되고 감사하며 바울의 선교 열정과 주님 주시는 은혜와 감격을 체험하며 일평생 남은 목회와 주님을 위해 충성하고자 다짐해 본다.
버스 안에서 이원희 목사님의 지나 온 어린 시절로부터 자라온 시절의 이야기가 모든 순례객들의 잠을 쫓아내면서까지 배를 잡고 웃음보를 터트렸다. 그러나 이야기의 결론은 오늘 나같은 죄인을 목사로 삼아준 것에 너무 감사하였다.
오직 한 길로 걸어갔던 바울의 걸어 갔던 그 길을 오늘도 우리는 걸어보며 그 감격과 결단을 기대해 본다.
오늘의 첫 순례의 길 이고니온의 바울 기념교회로 향한다.
'세계를 보라. 그러나 특히 꼬냐(이고니온)를 보라'는 옛 터키인의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고니온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비옥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와 비잔틴 시대 이후에는 크고 부유한 도시가 되었고 대주교 관구가 되었다.
이 이고니온은 바울이 제 1차 전도여행 시 방문한 곳으로 많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많은 이들을 믿게 하였다. 여기서 유대인의 회당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설교하였으나 반대하는 무리들이 바울 일행을 돌로 치려고 위협하자 루스드라와 더베로 가서 전도했고 이곳을 제 2차 전도여행 때도 방문했다(행 16:2).
비시디아 안디옥의 바울교회로 향하는 시간은 현지시간 10시 20분이었다. 오늘 이 아침도 3시간 여를 달려왔다. 바울을 핍박하던 자들이 얼마나 극성스러웠는지를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오던 중 가이드의 안내에 의하면 창문이 깨끗하다는 것은 알라의 축복이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고 믿기에 헌 집, 새 집을 막론하고 모두 깨끗함을 볼 수 있었다.
이고니온에 도착하여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회당과 교회 터, 아고라 장터, 원형극장 등을 보며 바울의 복음의 열정을 느껴보았던 귀한 시간이었다.
들어가던 아골라의 터 옆에 유적 가운데 전통, 창의 부조물이 있는 것을 보며 이곳에 전쟁물자도 거래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얼마나 큰 장터였으며 규모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바울이 걸었을 것으로 확신되는 당시의 도로를 우리도 걸어보며, 그 당시를 회상하여 보며, 그 검은 돌로 포장된 길이 얼마나 마차가 빈번히 다녔는지를 실감할 수 있도록 그 단단한 돌이 패였을 정도였다.
이고니온을 나와 근처의 한 식당에서 조금 이른 점심을 조항길 목사님의 기도 후 식사를 하고 식사의 마지막에 이병홍 목사님이 '피자'를 사셔서 맛있는 점심을 마쳤다.
점심 후 토로스 산맥으로 바울의 전도여행지를 버스로 3시간 여를 또 달려 나갔다.
달리던 중 만년설이 덮힌 산과 에일드 호수의 풍광이 너무도 아름다운 곳을 만나 버스를 멈추어 일행들의 사진촬영의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 너무도 좋은 추억의 시간으로 남을 것 같다. 참고로 이 에일드 호수는 염분이 많다고 한다.
이어서 코만도라고 하는 군부대를 만났는데 특수 군부대 훈련소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리고 특징 중 하나는 이런 군부대가 경치가 좋은 곳에 많이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타우르스 산맥을 넘어가게 되는데 이는 앗달리아로 넘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타우르스 산의 고지는 1890m정도가 된다고 하고 인근의 대리석을 이곳에서 다 조달한다고 하며 그래서 만년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산을 넘어야 버가와 앗달리로 갈 수 있다.
이 산맥을 넘어가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감사하던 중 카라자호렌 호수(눈이 녹아서 만들어 짐-댐을 만들어서 농업용수로 사용) 휴게소에 들려 차를 한 잔하게 되었는데 현장에서 가이드 연수를 받은 최석락 목사님께서 체리홍차를 내셔서 맛있는 차를 마시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교제를 나누게 되어 참 좋았다.
현지 시간 4시경 바울이 제 1차 전도여행 왕복 2회에 걸쳐 이 땅을 통과하였던(행 13:13, 14:2425) 버가에 도착하였다.
버가의 유적은 생각한 것보다 그 규모가 매우 컸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적 가운데는 성채와 성벽으로 둘러싸인 낮은 성읍과 외진 곳에 세워진 기념비 등이다. 성채는 이 성읍을 내려다 볼 수 있는 49m 정도 높이에 위치에 있었고, 입구는 남쪽에 있다. 두 개의 둥근 탑이 타원형으로 생긴 광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양 측면에 있는 도시문은 그 규모의 큼을 알 수 있고, 그 문을 통해 직선으로 들어가면 로마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체육관(김나지움)과 목욕탕 등 몇 개의 공공건물이 있으며, 그리고 남문과 서문 밖에는 공동묘지가 있고, 극장과 경기장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낮은 성읍 밖에 있었는데 지금도 거의 원형이 유지되어 있으며, 이 외에 바실리카식 교회당과 신전, 아고라(시장터)가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버가의 큰 유적지를 모두 다 자세하게 보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으나 다음의 일정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현지시간 오후 5시 오늘의 숙박지인 안탈리아로 향했다.
버가의 유적지를 보면서 그 당시의 규모를 알 수 있었고, 그 큰 아고라(시장터)에서 복음을 힘 있게 전했을 바울을 생각하면서 그의 효과적인 전도방법과 열정 등 또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의 숙소인 안탈리아로 향하던 중 내일의 일기예보에 강수의 예보가 있어서 일정을 바꾸어 배를 타기로 했다. 배를 타는 것은 옵션이었지만 출국 전 현지에서 예약을 하면 배나 되는 예약 비용이 든다고 해서 출국 전 예약을 했던 일정이었다.
바울의 일정 중 하나인 배를 타고 또 다시 그 일정의 하나를 경험해 보고자 한다. 바울이 100% 이 항로를 따라 전도여행을 했을 것이고, 바다의 위험을 경험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2일이면 갈 수 있는 이 항로의 길을 5일에 걸쳐서 도착했으니 바다의 위험이 얼마나 컸었던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선상에서 모든 목사님들과 사모님들 함께 이원희 목사님의 인도로 같이 기도할 때 얼마나 감격이 되던지, 함께 연주해 주신 정웅주 목사님의 섹소폰 연주는 우리의 감격과 기쁨, 그 흥분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컸었다.
숙소인 안탈리아 힐사이드 호텔에서 방에 짐을 풀어놓고 저녁의 식사를 가지고 모두 함께 약속이나 한듯이 바닷가를 산책하려고 했는데 바다로 내려가는 길목이 막혀 있어서 수영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 최경만 목사님, 박삼수 목사님, 이원희 목사님 사모님의 각설이 타령과 여러 공연이 있었는데 모두들 배꼽을 잡고 하루의 피로를 확 풀 수 있었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 밤도 평안하게 하소서!


바울의 선교 여행을 따라 (넷째 날)
풍광이 너무도 좋은 안탈리아의 힐인사이드 호텔에서 바닷가를 나가보려고 아침 일찍 나가보려고 하니 문이 잠겨있어서 못 나가보고 좋은 아침식사를 하다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방 키로 문을 열 수 있다고 하면서 부지런한 사람들은 나갔다 왔다고 하며 여러 가지로 안부를 묻고 숙소를 정리하고 8시 오늘의 일정을 위해 출발했다.
무라(바울이 압송될 때 갈아탄 곳). 바다라로 이동한다.
찬송을 함께 나누며 찬양집 3장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를 찬양하는데 예수님의 말씀만 들려지면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사람이 변화될 줄로 믿는다.
찬양집 2번 '목자의 심정' 광야에서 식물이 살기 위해 잎이 가시로 변하여 뿌리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식물과 이슬을 먹으며 뿌리를 살리려는 것과 그 가시 속에서 양을 먹이려는 목자의 심정을 살펴보며 우리의 각오를 새롭게 해 본다.
무라로 가던 우리 일행을 세운 것은 로뎀나무의 꽃이었다. 한 휴게소에서 차를 세워 일행을 로뎀나무의 꽃나무 앞에서 모델이 되어 본다. 얼마를 달렸을까 왼쪽 편으로는 지중해가 펼쳐지는데 우리의 일행을 또 세운다. 해변가에 내려가 지중해의 바닷물에 손도 담궈 보고, 사진도 몇 장씩 찍어본다. 물이 너무나 맑았다. 바다 속이 다 보이는 것 같았다.
아까는 산의 굽이굽이를 지나가며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세에 감탄을 하고 지금은 해변으로 난 도로를 달리면서 아름다움을 감상해 본다. 그러면서도 바울이 배로 전도여행을 갈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가아사랴 항구를 떠나 로마로 압송되어 가던 바울은 루기아도 무가성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백부장 율리오는 죄수들과 함께 이달리아로 가는 알렉산드아행 배로 바꿔 승선한 후 로마로 가는 항해하였던 무라(행 27:4-6)에 도착하여 당시의 바울을 생각해 본다. 귀족들의 무덤을 보고 원형극장을 바라보며 그 옛날 사람들이 건축한 그 규모와 시설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또 있었을까? 권력자들과 지배를 받던 서민들의 모습 또한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정웅주 목사님의 섹소폰 연주를 통해 그들의 과학적인 건축 능력에 또한 놀라웠고, 그 감격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이곳을 찾은 많은 순례객들도 브라보를 외치며 함께 동참하며 즐거워했다.
로마제국 하의 무라는 중세기까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성 니콜라스는 기원전 300년 바다라에서 출생하여 콘스탄틴 황제 시대에 무라성의 감독(주교)이 되었다. 후에 그는 뱃사람들이 숭배하던 이방신은 버리고 기독교를 믿게 하여 지중해를 항해하는 뱃사람들의 수호성자가 되었다. 오늘날의 이 마을에는 성 니콜라스 동상과 그 옆의 니콜라스 교회를 보았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보다는 조금은 맛이 떨어졌다. 식후 바로 버스에 올라 무라의 항구 터를 지나 바다라로 향한다.
무라의 항구터와 현 항구터는 조금 떨어져 있는데 이는 토사가 싸여 현 항구터보다 훨씬 안쪽에 위치하며 그 자취를 찾기는 힘들었다.
바울 당시에 꽤 편리한 항구로 바다라는 해상의 무역이 활발하였고, 비옥한 크산투스 강 유역에 농산업도 잘 되어 루기아 지방에서 가장 번성했던 곳이다. 바울은 제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로도섬을 거쳐 바다라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배를 타고 두로(베니게)로 건너갔다(행 21:1-2)고 한다. 이곳에는 아폴로의 신탁소가 있고, 오늘날에도 당시의 극장, 목욕탕, 성벽, 베스팟시안의 아치문, 리시아인의 석관 등의 유적이 남아있어 그 옛날의 번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옛 항구터는 침적물로 인해 지금이 물이 얕아서 선박의 출입이 어려우며, 출항하지도 않는다.
이 바다라는 거의 잘 찾지 않는 성경의 유적지이며,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도 8년의 가이드 경력 중 7년 만에 처음 찾는 곳이며, 기사는 처음 운전하여 오는 곳이라고 할 정도로 잘 찾지 않는 곳이었다. 이곳까지 찾아오는 시간이 만만치 않은데 성경에는 단 한 번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고, 바울이 이 곳에서 무엇을 하였다는 사건의 기록이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장시간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찬양의 소리가 작게 들려나오기 시작하면서 찬양하기로 하고 찬양집에 있는 여러 찬양을 부르면서 은혜를 나누었다. 함께 부른 찬양은 '주여 이 죄인이', '내 평생 살아온 길', '영문 밖의 길', '세 개의 못', '겟세마네 동산에서'를 부르면서 이원희 목사님의 목회 여정을 나누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었다.
우리 일행은 숙박지인 히에라볼리에 가기 전 골로새를 방문하게 되는데 감옥에 있으면서 성도들에게 편지로 성도들을 위로하며 도왔던 곳에 들르게 되었다. 골로새의 텔(언덕)에 오르고자 했으나 갑자기 비가 옴으로 버스에서 그냥 바라만 보고 당시의 바울을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며 면으로 만든 최고의 물건이 전시되어 판매하는 쇼핑센터에 들렸다.
우리 일행은 이곳을 지나 오늘의 마지막 지역인 히에라볼리(파묵깔레)로 이동한다. 히에라볼리는 '거룩한 성'이란 뜻을 갖고 있고, 파묵깔레는 '목화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도시 중앙에는 아폴로 신전이 자리를 잡고, 산 언덕에는 야외극장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고, 그 위에는 전도자 빌립집사의 순교자 무덤, 혹은 사도 빌립의 무덤이 있다. 빌립집사는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며 처녀 예언자인 그의 딸과 함께 이곳에 묻혔다고 유세비우스는 전 하고 있다. 옛날에는 히에라볼리가 타라탸 여신 숭배의 중심지였으며, 그 명칭은 헬라시대에 붙여진 것이다. 히에라볼리(파묵깔레)는 뜨거운 물이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온천 지대이다. 이곳의 온천수는 많은 양의 석회질이 오랜 시간 물 속에 침전되어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하얀색의 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이 절벽이 새벽부터 저녁까지 햇볕에 따라 시시각각 색깔이 변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띠고 있었다. 이 히에라볼리의 비경은 높이가 약 100m에 이르는 백색 석회석으로 멀리서 보면 만발한 목화송이로 덮힌 것 같이 보이는 일명 '목화성'이라는 뜻의 '파묵깔레'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의 숙박지인 트리폴리스에 도착하여 맛있는 호텔식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시 여정을 풀고 호텔 내에 있는 수영장(?)에서 온천욕을 함께 했다. 그렇지만 우리의 목욕 문화와는 달리 뜨겁지를 않으니 별로였던 것 같고, 몸의 미끈함도 크게 없는 우리의 것과는 달랐다.
그리고 모두 오늘 밤도 편안하게 취침 모드로 들어간다.
주여! 이 밤도 교회와 가정, 교우들에게 평안을 허락하소서!

바울의 선교 여행을 따라 (다섯째 날)
아침 5시에 일어나 5시 30분부터 이른 아침 호텔식으로 식사한 후 버스에 승차해 오늘 하루를 이승남 목사님의 기도하고 찬양집 27장 '아침 해가 돋을 때'를 찬양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순례의 길을 떠난다.
파묵깔레에는 지난 5개월 전 사도 빌립의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이 사도 빌립의 무덤과 기념교회를 방문한다. 그리고 온천이 발달된 곳이어서 많은 약대상이 와서 쉬고 민간요법을 통한 치료가 가능한 곳이라고 한다.
이른 아침의 공기를 맡으며 등반 아닌 등반을 하면서 들에 핀 양귀비(아네모네 / 들에 핀 백합화)로 인하여 모두들의 기분이 한층 업된 분위기에서 빌립의 기념교회, 그리고 최근에 발견된 빌립의 무덤과 원형극장을 거쳐서 까묵깔레의 족욕을 약 20분정도 하며 아침의 피로를 풀었다.
일행은 8시 32분 버스를 타고 라오디게아를 향하여 출발한다.
라오디게아라는 도시의 이름은 이 도시를 재건한 안티오코스의 부인인 라오디게의 이름을 따서 라오디게아라고 명명을 했으며 그 뜻은 '백성의 정의'이다. 소아시아의 일곱교회 중에 맨 마지막교회인 라오디게아교회가 있었고(계 3:15-16), 바울은 이곳 교회를 위해 많은 정성을 기울인 곳을(골 2:1) 8시 50분에 도착하였다. 전에는 개발이 안되었는데 요즘은 많이 개발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교회 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요한계시록 3:14-22의 말씀을 읽어보며 은혜를 사모한다. 이 라오디게아교회는 가정교회로 보고 있다. 성지순례는 성경의 말씀의 배경을 알게 되면 그 말씀의 깊이를 더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은 파묵깔레의 온천수를 수로로 통해 이곳까지 끌어들여 사용했기에 뜨겁든지 차겁든지 하라고 했을 것이라고 했겠다고 추정할 수 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아마 인근에 온천이 있었기에 뜨겁든지 차겁든지 하라고 하는 말씀 배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안약을 사서 발라 새롭게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풍요로움 속에서 기독교가 세속화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2만불 시대는 교인이 줄 수 밖에 없고, 주 5일제 의 수업과 사회구조가 되면 휴양지 교회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분이 안가는 지금의 현실 속에서 이 시대의 목회자로서 구분이 되는 목회자,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믿음을 가지고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며 우리의 결단을 다져본다. 지금도 민간요법으로 운영하는 안과병원이 있고, 이곳에서 나는 약초를 가지고 물에 섞어서 눈에다 바르면 안구건조증 같은 질병을 치료하고 있다고 한다. 사도 바울도 안질이 있었으니 왔다가지 않았을까 추측을 할 수 있다.
우리의 일행은 현지시간 9시 35분 빌라델비아교회로 향하였다. 빌라델비아는 필리아(사랑)과 델피아(형제)가 합쳐진 복합 명사로서 형제사랑이라는 뜻을 가졌다. 소아시아의 일곱교회 중 여섯 번째로 소개된 빌라델비아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같이 성령으로부터 책망 받는 일이 하나도 없고, 칭찬만 받은 모범적인 교회였다(계 3:7-13). 빌라델비아는 점령된 영토 내에서 혼자 고립된 채로 기독교를 신봉했다. 1391년에 함락되었을 때 이곳 베야짓 1세의 군대와 마뉴엘 2세의 지휘 하에 그리스 원군의 연합군에게 항복하였다는데 성경시대의 빌라델비아교회에서 기둥이 큰 교회로 남아있는 곳에서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그 은혜를 사모한다. 내 능력과 재능에 있어서 일을 이루었을 때는 내가 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이루었을 때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원로목사들께서 내 교회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나를 쓰셨다는 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자만하지 않아야 할 것이요,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 했으니 오늘의 우리 목회자도 참는 일이 참 중요하다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빌라델비아교회를 보면서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 칭찬받은 교회가 이처럼 기둥만 남은 교회로 무너졌는데 오늘의 우리의 교회, 믿음 신앙이 무너지지 않도록 꼭 붙잡는 역사가 일어나야 할 것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하며 간절함을 나누어 본다.
11시 20분 버스에 다시 올라 이곳에서 약 50분 정도 떨어진 사데교회로 향하는데 김가이드(강도사)가 방금 화덕에서 구운 따끈따끈한 빵으로 잠시의 허기를 달래며 간식의 시간을 가져본다. 소아시아 일곱교회 중 하나인 사데교회는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 같은 교회로 성령님의 크신 책망을 받은 교회였다. 또 아시아의 일곱교회 중 작은 교회에 속하지만 사도 요한은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라"고 요한계시록 3:4-5에 격려하셨다. 당시 로마시대의 부와권세를 상징하는 옷은 자주색 옷이었으나 사데의 의인은 흰옷을 약속받았으니 그 의미가 심장하다. 사데교회의 터에 도착하여 함께 요한계시록 3:1-5의 말씀을 함께 읽으며 비잔틴 시대의 교회의 모습을 보이며 어마어마한 아데미신전의 옆에 조그마한 교회로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에 세워진 교회일 것으로 보며 2절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던 것 감격과 소명 중에서 오늘 지금 나에게서 사라지거나 죽은 것이 얼마나 있는가? 현실 속에서 인내의 말씀을 잘 지켰는가? 나에게서 사라지거나 죽게된 것은 무엇일까?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야 할 터인데 다시 한번 깨달으며 죽으면 이렇게 무너질 수 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우리의 죽게된 것을 다시 한번 회복하는 귀한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12시 45분 다시 버스에 올라 2시간 여를 달려 일행은 다시 소아시아의 일곱교회 중 하나인 에베소교회로 향하였다. 버스 안에서 2시간 여를 달리게 될 때 찬양집 중 '요한의 아들 시몬아", "허락하신 새 땅에" "예수님이 좋은 걸" 등을 부르며 차 안에서의 작은 부흥회가 열렸다. 버스는 그동안 열심히 달려 3시에 예약한 식당에 도착하여 허기진 배를 달래주었다. 모두가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복음을 전하다 배가 고프면 어쨌을까 싶을 정도였다.
식사 후 잠시 가죽공장에 들려 사과음료를 마시며, 쇼를 보면서 가죽제품 쇼핑을 하였다. 설명에 의하면 시중에는 팔리지 않는 수출품이라고 한다. 가죽공장에서 나와 5분 여를 달려 사도 요한의 교회 터로 일행을 안내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아데미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 규모가 너무 큼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으며 그 지붕을 어떻게 올렸을까?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부탁하신 말씀에 따라 예수의 모친 마리아를 모시고 이곳에 와서 말년을 보냈고, 요한은 이곳에서 감독을 하였고,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을 기록하였으며, 밧모섬에 유배를 가서 계시를 받아 일곱교회에 보냈다(계 1:11). 10여분을 달려 에베소에 도착하였고, 그 에베소를 다 보는 것은 1시간 여를 소요하며 이것도 다 볼 수 없는 곳이다.
에베소의 헬라어 의미는 '인내'이다. 고대의 에베소는 만을 긴 항구였는데 플리나우스는 "단번에 바다가 다이아나 신전을 씻어내곤 했는가"라고 했다. 그러나 이 천연항구는 카이스터 강의 진흙으로 서서히 메워졌다. 바울은 제 2차 전도여행 시 이곳에서 잠시 동안 전도하였고(행 18:19), 제 3차 전도여행 시에는 세례를 베풀고 안수하매 성령이 강림하여 방언과 예언도 하고 희한한 이적을 많이 행하자 이것을 본 마술객들이 마술 책을 불사르고 예수를 믿었다(행 19:1-10). 그리고 마게도냐로 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밀레도에 이르러 이곳에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너희는 깨어 내가 3년 동안이나 눈물로 훈련한 것을 기억하라"고 권면하였다(행 20:17-31). 바울은 로마 옥중에서 이곳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였다(엡 1;1). 디모데, 아굴라, 브리스길라, 아볼로, 두기고, 드로비모 등이 이곳 교회의 교역자였다(딤전 1:3, 행 18:18, 딤후 4:12). 그리고 에베소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 오네시보로, 구리장색 알렉산더, 데메드리오, 스게와의 일곱 아들, 부겔로, 허모게네, 후메네오, 알렉산더 등의 고향이다(딤전 1:20, 딤후 1:15-18, 4:14). 바울이 복음 전함에 있어서 처음 실패한 이유는 종교의 도시, 문화, 음란의 도시였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이러한 여러 조건으로 실패했었으나 3차에서는 대단한 성공을 하여 마술사의 책을 불사르며 엄청난 역사를 일으켰던 곳을 우리 일행이 한 곳 한 곳을 다니며 은혜를 체험하고, 원형극장에서의 정웅주 목사님의 섹소폰 연주와 함께 찬양함은 많은 은혜와 감격을 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바울이 다녔을 것으로 100%로 확신할 수 있는 로마 시대의 그 길을 밟으며, 그리고 함께 기도하면서 새로운 각오와 은혜를 사모하면서 오늘의 숙소인 호텔에 도착하였다. 방 배정을 받고, 함께 식사를 한 후 바닷가(에게해)에 내려가 지금까지의 일정에 대한 소감과 최경만 목사님의 인사와 각설이 타령을 통한 감사와 인사를 대신한 후 숙소로 향하여 오늘의 안식에 처해 본다.


바울의 선교 여행을 따라 (여섯째 날)
주일 새벽 6시 우리 일행의 모두는 바닷가에 모여 이원희 목사님의 인도로 주께 예배를 드린다. 바울의 전도지였던 에베소에서 주일의 예배를 묵상함으로 시작하여 찬송 310장을 부르고 조항길 목사님의 기도가 있었다. 찬송 143장을 1-2절을 함께 부르고 성경 고린도전서 11:23-26을 보시고 떡과 포도주를 나눈 후 찬송 143장 5절을 부른 후 류지헌 목사님의 축도로 마치고, 이어서 찬송 311장을 부르며 헌금을 한 후 이원희 목사님의 기도, 나는 너를 위해 몸 버려 피 흘려주셨는데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주겠느냐 하실 때 내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드리는 믿음으로 남은 생애를 살게 하소서! 하며 기도하며 예배를 드렸으니 우리가 평소에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축복의 시간이 되었다.
아침 식사를 호텔식으로 맛있게 한 후 즐거운 교제를 나눈 후 오늘의 일정을 위해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은혜를 나누기 위한 박수를 한 후 찬양집 32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를 힘 있게 찬양하며 즐겁고 복된 순례의 길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오늘의 첫 순례의 길을 8시 10분 밀레도로 향한다.
밀레도는 그 이름을 그리스 이전 시대부터 지녀온 곳이다. 밀레도의 바울을 만나기 위해 가는 에베소의 장로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길을 떠난다. 바울이 너무 너무 보고 싶었던 에베소의 장로들! 그렇다면 오늘 한국 교회의 목사와 장로의 관계는 어떨까? 또 이런 불편한 관계의 주요 원인 제공자는 누구였을까?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생각의 시간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9시경 바울 시대의 밀레도는 활기가 있는 항구에 도착하였다. 당시 이곳은 레스보스(미둘레네), 기오 섬, 사모스 섬 등에서 남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박해야 하는 자연적인 항구의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사도행전 20:17-38을 읽으며 말씀으로 은혜를 나눈다. 밀레도는 유명한 철학자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데스 등의 출신지이기도 하며,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자기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들어와 교회를 해칠까 염려스러우니 잘 관리하라고 부탁하며 눈물의 이별을 한 곳이다(행 20:17-38). 후에 바울은 병든 드로비모을 이곳 밀레도에 머물게 하기도 했다(딤후 4:20). 이동하면서 찬양집 29장 '거기 너 있었는가?'를 부르면서 은혜를 사모하여 본다.
밀레도의 항구를 직접 보니 그 규모가 너무 컸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곳을 방문했을 것으로 보며, 인공항만기념비 앞에서 모임을 갖고 이곳에서 이별을 했을 것으로 본다. 목욕탕에 가보면 냉온탕 파이프가 있을 만큼 발전했던 것을 또한 볼 수 있었다. 이 항구 터에서 바울과 에베소의 장로들과의 석별의 정을 나누었던 마음과 죽을 각오를 가지고 가는 심정으로 밀레도에 온 심정과 복음의 열정을 갖기를 소망해 보며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본다.
다음의 여정 서머나로 가던 중 버스 안에서 우리 모임의 일행을 한 가정 한 가정씩 소개의 시간을 갖는다.
중간의 휴게소에서 정웅주 목사님의 수고로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다시 출발하여 12시경 도착했다.
서머나는 '몰약'이라는 뜻을 가진 도시로 인구 약 400만 명이 거주하는 큰 도시 중의 하나이다. 서머나교회의 성도들의 신앙 절개가 몰약과 같이 향기를 뿜는 곳이다. 요한계시록의 기록에 의하면 사도 요한이 편지를 보낸 일곱교회 중의 하나이며 빌라델비아교회와 더불어 한없는 칭찬을 받은 곳이다(계 1:11, 2:8-11). 이곳의 서머나교회는 외견상 빈곤하고 끊임없는 환난에 처해 있었으며 몇 사람이 옥에 갇히는 수난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서머나교회의 신앙은 죽도록 충성하였기 때문에 모두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자격자들이라고 본다.
가장 서구적이고 특별한 유적을 볼 것이 없어서 폴리갑의 기념교회가 거의 전부이기에 버스에서 하차하여 기념교회 앞에서 오늘의 교회 모습을 보면서 기념 촬영을 하였고 예수님의 성의(세마포)의 복사본이 이곳에 있다.
기념 촬영을 하고 다음의 행선지인 두아디라교회로 향한다.
거의 2시가 다 되어 식당에서 점심을 하고 계속해서 목적지인 두아디라로 향하여 2시 25분 도착하였는데 두아디라는 '성읍' '희생' 등의 의미를 갖고 있는 곳이다. 바울은 빌립보에 들렸을 때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를 하며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는 한 여자를 만났다(행 16:14). 사도행전 19:10에 시사된대로 이 도시에 언제, 누가 제일 처음 기독교 복음을 전파했는지의 기록은 없지만 바울 자신이나 아마도 바울을 따르던 독실한 신자 중에 누가 전했으리라고 본다. 95년 경에 요한계시록이 작성될 때 두아디라에는 상당히 강력한 교회가 있었다(계 2:18-29). 이는 이 곳의 교회가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의 칭찬을 받은 것과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다고 한 편지의 내용에서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 2:18-29까지 읽고서 두아디라의 자주장사 루디아의 옷 색깔은 자주색으로 왕의 색깔이고, 제사장의 옷의 색깔로도 들어간다. 자주색은 금값과 같이 비싸게 판매가 되었고, 페르시아의 바다 패총에서 얻을 수 있었다. 자주옷감 장사 루디아는 큰 부자였고, 큰 장사를 하는 여인이었다. 두아디라의 교회가 갖고 있는 문제는 오늘의 우리의 상황과 같이 이단들의 문제였다. 오늘 우리의 목회자도 이러한 이단들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인데 오늘 말씀처럼 '용납'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교회가 바로 서고, 목회자가 바로 서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고, 내가 바로 서게 되면 이단들이 들어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회자, 말씀에 바로 서는 목회자가 되기를 위해 기도해 본다.
버가모를 향한 요한계시록 2:12-17의 말씀을 읽으면서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교회가 영적인 힘을 잃으면 교회가 백화점으로, 술집으로 바뀌는 것처럼 이렇게 웅장한 교회, 신전이 이처럼 폐허가 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우리의 삶과 목회에 경종을 울리는 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클리피온에 도착한 것은 4시 50분 경이었고 치료소를 모두 볼 수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대리석 길을 흰 옷을 입은 환자들이 맨 발로 차갑게 하여 걷게 하고, 각 치료의 방으로 가기 위해 신전에서 신의 치료를 기다리며 간구하는 곳을 지나 각기 치료의 방으로 들어가 가능한 환기도 잘 되고, 치료소의 온도도 시원하게 하여 벽과 바닥으로는 수로를 통해 물을 지나가게 하여 온도를 낮추고, 그 곳에서 다시 대리석 바닥에 발목까지 물을 흐르게 하여 치료를 하면서 천정에 나 있는 구멍을 통하여 환자의 이름을 불러가며 치료가 되었다는 정신적 확신을 주고, 다시 야외 음악당을 통하여 모노드라마(왜 내가 이런 병에 걸리게 되었는지?)를 통하여 치료를 마친다. 버가모의 지역은 도서가 발전되었는데 진료를 통한 치료를 할 수 있었고, 오늘의 한국도 이처럼 전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곳에서 약 40여 분을 달려 오늘의 숙박지인 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잠시 정돈하고, 호텔식 저녁 식사를 하고 내일의 순례를 위하여 각자의 처소로 돌아가 숙면을 취하여 본다.


바울의 선교 여행을 따라 (일곱째 날)
이른 아침 5시 30분 아침식사를 마치고 6시 버스에 올라 조항길 목사님의 기도로 오늘의 일정을 위한 출발을 한다. 찬양집 35장 '나의 등 뒤에서', 34장 '내 마음에 주를 위한 사랑이', 36장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을 기쁨과 감격과 소망의 찬양을 드린다.
터키에서의 일정을 마지막으로 가는 앗소(2시간), 바울이 환상을 보고 출발했던 알렉산더 드로아(1시간 30분), 드로아(트로이 / 50분정도 소요)로 순례하고 항구까지 1시간 정도 버스로 가서 버스와 함께 50여분을 배를 타고 국경 근처에서 버스를 옮겨 타서 점심식사 후 유럽의 지경 그리스에서 가이드를 만나 성지순례를 계속하게 된다.
8시 15분 앗소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사도행전 20:5-15절의 말씀을 읽으면서 그 여정을 상고해 본다. "그들이 먼저 가서(바울의 일행/드로아에서 먼저 기다림) 우리는 무교절 빌립보에서 떠나(네압볼리에서 유럽의 첫발을 디딤-25분 정도 가면 빌립보에 이르게 됨-바울당시 네압볼리는 빌립보경내에 있었음, 강까지 배가 들어와 떠날 수 있었다) 사모드라게(하루) 빌립보(하루) 6절에 닷새 만에 - 갈 때 이틀, 올 때 닷새 이는 곧 풍랑을 만난 것을 알 수 있다. (바다의 위험을 만난 곳이 이 곳임을 알 수 있다) 13절 / 우리는 -바울을 제외한 일행 바울을 태우려고 앗소까지 옴. 바울이 걸어서(육로) 가고자 했다 / 바울이 육지를 간 것은 전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 길에 아마도 유대인 회당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오직 사랑에 매여서 소도시라 할지라도 어느 곳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열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14절 / 앗소에서 우리를 기다리니 - 전도하려고 늦게 왔을 것이며, 15절 / 밀레도에 이르니라"
바울이 오직 복음 하나만 생각하며 전도 여행의 길을 떠났던 것처럼 바울의 열정을 생각하며 함께 기도해 본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죽은 유두고를 회생시키고(행 20:7-12), 일단 도보로 드로아에서 32Km 떨어진 앗소까지 왔다가 이곳에서 배를 타고 미둘레네로 향하였다(행 20:13-14). 스토아 철학자 클레안테스의 고향이기도 한 앗소는 훌륭한 농업지역으로 양질의 밀을 수출하기도 했다. 오늘날 이 곳 항구 위에 있는 유적지에는 맨 위에 아데미 신전의 기둥이 남아 있으며 그 옆에는 교회와 터키 사원도 함께 남아 있다.
아드라뭇데노라는 옛 명칭은 현재 내륙도시인 에드레미드라는 이름에 그 흔적이 남아 있으나 원래의 위치는 카라타쉬이다. 아드라뭇데노는 소아시아 무시아 지역에 있던 고대의 항구 도시이다. 이곳을 레스보스(미둘레네) 섬을 면하고 있는 아드라뭇데노 만의 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이 도시에서 온 배가 가이사랴에서 바울을 싣고 갔다(행 27:2)는 단 한 번의 기록만이 있다. 아마 바울을 압송해서 가던 아드라뭇데노 행 배는 아시아 해안을 따라 로마로 가도록 연결시켜 주는 배로 알렉산드리아로 향해 가던 배라고 추측된다(행 27:1-6).
드로아는 에게 해안의 테네도스 섬 맞은 편에 있는 항구도시로 고대 트로이 남쪽 약 45Km 지점에 있다. 드로아의 옛 지명은 '시기아'였다. 고대에 이 항구는 헬레스폰트 강 어귀 근처에 있었고, 북풍으로부터 피난처 역할을 했다. 특히 소아시아 지역에서 해로를 통해 로마로 가기 위해서는 이 항구를 거쳤다.
바울은 이곳을 최소한 3번 방문했다. 제 2차 전도여행 때 북쪽 비두니아 지방으로 가려고 하다가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아 이곳에서 기도하던 중에 환상을 보게 되었고, 마게도냐인의 초청을 보고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순종하여 유럽전도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행 16:6, 10). 바울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로 직행하고 네압볼리를 거쳐 빌립보에 갔는데 이곳이 마케도니아 지방의 첫 성이었다(행 16:11-12). 또 제 3차 전도여행 귀로에 드로아에 왔는데 이곳에서 7일간 머무르면서 집회를 했는데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문에 걸터앉아 졸다가 삼층루에서 떨어져 죽은 것을 바울이 기도하여 살려낸 일이 있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이곳에 이미 복음이 전파되어 교회가 설립되었다는 증거가 확실하다(딤후 4;13).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의 계획이나 방법이라도 바꿀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주님 말씀하시면 나가리라!
버스에 올라 찬양집 37번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가리라'를 찬양하면서 바울의 선교지가 바뀌어 지는 순종의 역사가 나타나야 되기를 소망해 본다. 주님! 순종하게 하소서!
이곳을 출발하여 10시 20분 출발하여 50여분 정도 달려 드로아(트로이)로 이동한다.
드로아(트로이)에 현지시간으로 11시 10분 경 도착하여 트로이 목마에 올라가거나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일부의 사람은 그 안에 있는 옛적의 성벽의 흔적 등을 안내받고 일행과 함께 다시 항구까지 출발하였다. 항구까지는 1시간 정도 버스로 간다고 하였는데 도착하여 보니 12시 20분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지도 않고 그냥 배에 버스와 함께 올라 탔다. 이 배는 우리나라 도서지역을 운행하는 배와 같이 전문적으로 사람을 수송하는 것이 아니라 화물과 함께 수송하는 배여서 아름다움은 전혀 없는 그냥 배였다. 이렇게 버스와 함께 배로 40여분을 바다 위로 달려 아직은 터키지만 유럽으로의 발을 딛게 되었다. 배에서 내려 잠시 달려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2시 20분 그리스의 국경 근처까지 버스는 신나게 달렸다. 가이드의 말에는 20-30분 후 바꿔 탈 다른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고한 후세인이 운행하는 버스와 김홍기 강도사님을 뒤로 하고 현지 시간 2시 55분 다른 버스에 옮겨 타 그리스의 일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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