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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낮은 곳에 울려 퍼지는 자선냄비의 종소리- 구세군 대한본영

글쓴이 : 포토바이블 날짜 : 2013-03-04 (월) 10:53 조회 : 1631


구세군 대한본영, 서울 중구 정동 1-23번지

97. 낮은 곳에 울려 퍼지는 자선냄비의 종소리- 구세군 대한본영

'군대 같은 교회' 구세군(救世軍, Salvation Army)은 영국 감리교 목사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 1829-1912)와 부인 캐서린이 산업혁명으로 밀려난 소외계층의 구제, 나아가 가난과 사회악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고자 1865년 창설한 개신교의 한 종파이다. 군대식 제도를 도입하는 독특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런던에 총본부(사령부)가 있으며, 각 '군국(軍國)'에는 사령관, 그 밑에 지역사령관과 지방장관이 있으며, 각 지방에는 소속된 '영(營)'이 있어 담당 사관이 선교와 예배, 지역사회 봉사사업을 지도한다. 사관(士官)은 제복을 입고 계급장도 달고 있으며, 영문(營門, 교회)에는 병사들도 있어서 영혼 구원을 위해 세상의 죄악과 싸울 것을 다짐한다. 전 세계 80개국에 16,000개의 전도센터가 있으며, 3,000여 개의 사회복지단체·기관·학교·병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 구세군은 일본에 있던 조선 유학생이 1907년 창립자 윌리엄 부스 대장의 일본 순회 집회에 참석하였다가 조선 선교를 요청하게 되었고, 이에 1908년 10월 1일, 정령 허가두(C. Hoggard 1861∼1935) 사관과 그 일행이 조선에 파견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는 일제 침략에 저항하여 의병을 조직해 항일 투쟁을 벌이던 때였기에, ‘치외법권의 특권’을 지닌 제복 입은 서양인들이 입대를 권유하자 많은 이들이 독립군에 지원하듯 몰렸다. 그러나 총 대신 성경을 나눠주고, 전투가 아닌 길거리로 나가 나팔을 불며 전도하는 것에 실망하고 구세군을 떠나는 이들이 속출했다. ‘마귀 속박에서 자유’를 ‘일제 지배에서 독립’으로 오해한 데서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이런 우여곡절 속에서도 초대 한국사령관 허가두 정령의 재임 8년 동안 사관 87명, 교인 2753명, 영문 78개소를 여는 등, 한국 구세군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구세군은 가두캠페인과 문서 선교 등으로 금주, 금연의 절제운동을 펼치고, 1918 년 한 독지가의 기부금으로 아동구제시설인 혜천원을, 1926년에는 윤락여성을 위한 여자관을 설립하고, 학교도 세우는 등 활발한 사회사업을 펼쳤다. 그리고 1928년 12월에 박준섭 사관이 서울 도심에 자선냄비를 설치하면서 불우이웃돕기를 시작했는데, 이 구세군 자선냄비는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부두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의 구세군 사관이던 조지프 맥피는 갑작스런 난파사고를 당한 이들과 빈민들을 돕기 위해 부두로 나가 큰 쇠솥을 걸고 그 위에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 라는 글을 써 붙여 모금활동을 벌인 것이 계기가 되어 매년 성탄 시즌에 거리모금을 시작하게 되었고, 현재는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구세군 자선냄비의 모금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한편 일제는 1941년 명칭을 [구세단]으로 바꾸고 해외 사관들을 강제 귀국시켰으며, 전쟁에 협조하지 않는다며 1943년 한국 구세군을 강제 폐쇄하였다. 이에 지하교회로 명맥을 이어오던 한국 구세군은 해방 이후 1947년 새 사령관 부임과 함께 사업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당시 사령관이던 로오드 부장이 피랍되고, 진주영문 담임 사관 노영수 참령이 순교당하는 등 수난을 겪기도 했다. 현재 220여개의 영문과 100,000여명의 교인, 220여개의 지역사회복지시설과 47개의 전문 사회사업시설 등의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며 선교와 사회사업에 힘쓰고 있다.

정동에 위치한 구세군중앙회관 건물은 구세군대장 브램웰 부스의 70세 생일을 기념하여 1928년에 완공된 것으로, 1985년까지 교역자 양성을 위한 구세군사관학교로 사용되었으며, 1955~1981년에는 한국구세군교회의 본부(구세군 대한본영) 건물로도 사용되었다. 2003년에 서울시 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되었다. 구세군사관학교는 1985년 과천으로, 구세군대한본영은 2008년 충정로 100주년기념빌딩으로 각각 이전했다.

2004년에 개관한 구세군박물관은 구세군의 한국선교 100여 년의 유산들과 기독교관련 자료 및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초대 한국사령관 허가두 사관의 사무실을 재현하였으며, 1930년대에 사용된 쇠로 만든 자선냄비를 비롯하여 각종 책과 자료집, 사진들, 구세군 복장의 변천사 등도 한 눈에 볼 수 있다.

1908년부터 시작된 한국구세군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교단으로 인식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 선교 103년 동안, 군번 없는 군인 정신으로 무장하고 총 대신 성경을 들고, 연말이면 길거리에 자선냄비를 걸고 거리로 나가 이 땅의 낮은 곳에서 먹이고(soup), 씻기고 입히고(soap), 구원(salvation)으로 인도하는, 이른바 ‘3S 사역’을 펼치며 오늘도 하나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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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글: 진흥홀리투어(주), 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 회장 박경진 장로 (02-2230-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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